외국계 경력이 많지 않지만 그래도 그동안 함께 일했던 외국인들의 특징을 써보려고 한다. 상당히 제한적이다. 겨우 미국인, 독일인, 중국인, 인도인, 이탈리아인 정도다. 그리고 내가 그들에 대해서 아는 게 전부가 아니란 점을 잘 인지하고 있다. 소수의 샘플을 가지고 일반화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그저 지난 기억을 더듬어보며 "그땐 그랬지", "그 사람들은 그랬어"하며 재미로 썰을 풀어보고자 한다. 아마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도 있을 테고, 다른 경험을 한 사람도 있을 텐데 한 번 비교해 보시는 건 어떨까 싶다.
미국인:
책임감이 강하다. 본인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남녀노소 따지지 않고 오로지 실력으로 나를 증명한다. 평소에 입에 "Sorry"가 붙어 있다. 근데 업무에서 "Sorry"는 조심스러워한다. 상대방에게 배려하는 차원에서 말하는 "Sorry"는 누구나 잘 받아주지만, 회사에서 섣부르게 "Sorry" 하면 나 스스로를 평가절하시키는 느낌이다. 미국인은 'Honesty is the best policy'와 'Second chance' 같은 관대한 면이 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을 때 이를 솔직하게 말하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괜찮다!
평소에 한 없이 친절하지만 본인과 대립하는 경우가 발생하면 상대가 누구든, 영어를 잘하건 잘 못하건 얄짤없다 (우리는 상대의 한국어 실력을 맞춰주는 경향이 있지만). 미국인은 상대방을 말빨로 찍어 누르려는 성향이 있는데 (말빨이 곧 실력) 말빨을 말빨로 받아치면 희한하게 서로 리스펙 하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뭐랄까? 미국 정치인들이 피 튀기게 토론하고 끝나면 웃으며 악수하는 느낌이랄까? 근데 상대방에게 말빨로 밀리면 사람들에게 영원히 바보가 되는 건 순식간이다. 무조건 받아치던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놓아야 한다!
독일인:
평소에는 매우 친절하다. 아이컨택도 잘하고. 스몰토크도 잘하고. 미소도 잘 짓고. 어쩔 땐 이 친구가 미국 놈인지 혼동이 온다. 근데 미국인과 차이점이라면, 독일인이라는 자부심이 있어서 소위 외국인이 자신들에게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을 굉장히 싫어한다. 그랬던 것 같다. 인상 찌푸리는 모습을 자주 봤기에... 미국인은 미국이 워낙 다양한 문화라서 그런지 상대의 배경을 궁금해 할 수는 있어도 딱히 상관없고, 나와 싸우는 상대방만 본다는 느낌이다 (어쨌든 너만 팬다 느낌). 독일인은 상대방의 정체성(국적, 출신 등)도 따지는 느낌이랄까?
이메일을 대게 길게 쓴다. 이유가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풀어서 쓰려고 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업무 회의가 잦았다. 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말하고, 쓰고, 토론하는 방식이 자연스럽다. 업무 처리 속도는 늦다. 확실히 유럽의 일본인 느낌이다. 물론 업무 처리는 확실하게 한다. 독일인과 일할 때 특히 힘들었던 점은 한국인 특유의 눈치, 센스 같은 게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상대가 아무리 ㄱ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센스가 필요한데 ㄱ떡같이 말하면 그저 ㄱ떡같이 알아듣는다. 그래서 설명하려면 말이 길어진다.
중국인:
한국의 나이, 서열 문화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서양 문화에 대한 이해심도 있다. 근데 자신들만의 '쪼'(?)가 있어서 이걸 맞추기가 쉽지 않다. 객관적으로 옳은 방법이 있는데 자신들의 방법이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콧대 높은 미국인, 유럽 사람들도 중국인을 유독 싫어하는 이유랄까?) 중국인과 여러 번 부딪힌 적이 있었는데 내가 좀 놀랐던 점은 '큰 형', '큰 누나' 같은 배포나 넓은 아량이 있는 것 같았다. 서로 치고받고 하다가 나중엔 나를 약간 '우쭈쭈' 해주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잘해줄 땐 진짜 잘해준다.
중국인들이 서양 문화에 대한 이해심도 있다는 뜻은 나이와 서열을 따지는 것 같으면서도 같은 동양인이라도 외국인들을 나이와 서열 상관없이 리스펙 하며 대해주는 면도 있다. 그래서 중국인들을 서양식으로 스스럼없이 대하면서도 티 나게 상대방의 나이와 직위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줬을 때 쉽게 환심을 얻었던 기억이 있다. 업무를 처리하는 속도는 빠를 땐 빠르고, 느릴 땐 느리다. 다행인 점은 한국식으로 재촉하면 이를 또 잘 받아주는 것 같았다. 미국인이었으면 아마 나를 미친놈 취급했을 일이다.
인도인:
인도인 상사를 만났을 땐 되게 신선했다. 뭐랄까. 따스한 봄날에 솔솔 불어오는 카레 냄새랄까? 일단 말투가 굉장히 호의적이고, 지시사항이 합리적이었다. 편하게 다가가기 좋은 사람이랄까? 내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칭찬도 아끼지 않았고, 근데 또 할 말은 똑 부러지게 하는 면도 있다. 이래저래 왜 인도 출신 글로벌 CEO가 많이 탄생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같은 팀이면 좋은데 상대 팀이면 피곤한 스타일이다. 이유는 좀 집요한 면이 있다. 본인이 설득이 될 때까지 물어본다. 그리고 본인의 이득을 위해 굉장히 열심히 노력한다.
인도 사람들하고 같이 일하는 건 매우 찬성이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인도인들 중에 똑똑한 사람이 많았던 것 같고, 영어 발음이 안 좋아서 그렇지 소통도 꽤나 잘 되는 편이다. 지금까지 내가 받은 인상을 좀 정리해 보면 이런 것 같다. 상사로서는 굉장히 좋다. 나를 위해 일하는 직원으로서는 쉽지 않을 수 있다 (되게 잘 따진다). 회사 동료이거나 팀원이면 좋다. 일도 잘하고. 열심히 한다. 근데 또 개인적으로 친해지는 건 다른 이야기다. 같은 동양인이지만 문화적으로, 정서적으로 너무 달라서 과연 잘 융화될 수 있을까는 의문이다.
이탈리아인:
이탈리아 사람은 확실히 다른 유럽 사람들과 차이가 있다. 한국 사람들처럼 호탕하고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는 마인드가 있다. 뭐랄까? 우리가 흔히 "소주 한 잔 하면서 이야기나 할까?" 라면서 꼬인 실타래를 풀어가는 느낌이 있다. 물론 소주 대신 와인을 마신다 (실제로 이탈리아 아재들한테 대낮에 진한 와인 냄새가 풀풀 나서 식겁했었다. 새삼스럽게...) 업무 방식은 미국인이나 독일인처럼 논리적으로 상황을 분석해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약간 한국식이다. 일단 전화기부터 들고 일 잘하는 사람에게 물어본다. 그리고 쪼기 시작.
이탈리아 사람들과 일할 때 '마피아' 세계가 연상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와 서열을 따진다. 이것도 한국식이다. 괜히 이탈리아 사람들이 우리와 비슷하다고 하는 게 아닌 것 같다. 윗사람에게 말할 기회가 있어도 섣부르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 어차피 그렇게 해서는 일도 잘 처리 못한다. 이탈리아 사람들과 일할 때는 중간에 누군가와 반드시 친해져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일을 빨리 처리할 수 있다. 내가 개인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점은 이탈리아 사람들 특유의 게으르지 않은데 게으른 듯한 꼼꼼하지 못한 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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